- 기이협 상임회장이신 박형택목사가 1시간30분 동안 기이협에서 강의를 한 것으로 강의는 완전하게 설명되었지만, 본문은 배포자료로서 대부분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 글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며 각 주제와 함께 인용한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강의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
이단연구의 기본자세 30년을 이단연구해 왔지만 이단조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황규학의 “메시야 과정설”과 이ㅇ호의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분이시오 인격적으로 구분된다는 합신보고서에 “구별”이라는 용어를 안쓰고 구분이라는 용서를 썼다고 “3신론”으로 조작한 사건이 있었다. 정동섭교수도 추천서 하나 써주었다가 이단조작으로 혼이 난 적이 있다. 이단연구는 개인이 연구를 해서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라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연구해서 발표하고 공적 기관을 통해서 규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김성로목사 건으로 인하여 정이철목사와 이인규권사의 관계, 기이협에 대한 싸잡아 공격하는 정이철목사의 행동을 보면서 뭔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 이 강좌를 준비했다. 이 강좌는 어느 누구를 공격하고 옹호하는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고도 하고 부활의 종교라고도 한다. 타 종교에는 없는 독특한 구속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복음을 강조한다고 부활을 부정하는가? 부활의 복음을 강조한다고 십자가를 부정하는가? 십자가 중심신앙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를 위하여 왜 죽으셨는가를 강조 부활중심 신앙 -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 강조 십자가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반영한다. 예수님이 인간이어야 함은 인간을 죄를 위한 대속이 필요해서이고 신성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어야 함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의 중보자로서 하나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이다.(루이스 벌코프) 1.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도 십자가의 도 =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게 된 배경(고전1:18) 고린도교회에 4분파의 분쟁 바울파, 아볼로파,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냐? 내가 세례줄려고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로 하지 않은 것은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든지 간에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앙의 중심이 십자가 중심신앙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고전 1:18의 해석-십자가의 도는 우리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대속사건인데 불신자들편에서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 편에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임을 말한다. 고전 2:2의 해석-사도바울이 헬라사람들처럼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는 그리스도요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기 때문에 내가 전도할 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려는 것이다. 헬라인들은 말과 지혜를 중요시했다. 사도바울은 말과 지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가 중요한 것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언 (고전 15장) 고린도교회 안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이들에게 사도바울은 부활에 대한 강조한다. 이원론에 익숙해 있던 헬라인들에게 있어 육체의 부활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몸의 부활에 대한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부활의 필연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성경대로 죽으시고 예수님의 부활하심도 성경의 약속을 따라 부활하신 것임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고전 15:13-19의 해석 -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증인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여태까지 증거했기 때문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지 못했고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면 믿음도 헛것이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예수믿고 죽은 사람들도 망하였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땅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불쌍한 자이다”라고 설파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아주 강력한 논증이다. 부활하는 도 행 4:1-4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 전함을 싫어하였다. 왜 사도행전에서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는 것일까? 유대인들에게 =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예수가 부활하셨는데 바로 그 분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 곧 구원자라는 사실을 증거 = 대상은 주로 유대인 이방인들에게 =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고 더럽다는 이원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몸의 부활을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한다. 헬라인들에게 몸의 부활은 믿을 수 없는 논리였다. = 대상은 주로 이방인 유대인들을 향한 성경적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사도행전 1:8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리라고 선포하신다. 십자가의 증인인가? 부활의 증인인가? 1) 가룟유다 대신 사도 선출한 이유 - 행 1:22 - 바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었다. 2) 베드로의 설교 중심 -행 2:23-24 - 너희가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부활을 증거한 것이다. 행 2:31-33 - 다윗이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서 버림이 되지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치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6 - 그런즉 이스라엘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3:14-15 -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앉은 뱅이를 고쳤을 때) 행 4:10 -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 4:33 -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행 5:29-32 -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람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행 9:1-18 - 사울이 만난 예수는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 행 17:1-3 =유대인의 회당에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18:5-예수가 그리스도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증거하는 성경의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행17:18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하다 (아덴에서) 행 17:32 - 베뢰아와 아덴에서 이방인에게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다” 행 17:31 -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 (아레오바고에서) 행 18:28 -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성경으로 증거 행 24:15, 21 -바울이 의인과 악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벨릭스 총독앞에서) 행 25:19 -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 (아그립바 왕앞에서 송사) 행 26:23 - 곧 그리스도가 죽은자 가운데서 먼서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포하셨다(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의 증언)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복음증거하는 내용을 보면 십자가 중심신앙이냐? 부활중심 신앙이냐?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요 죽으신 후에 부활하신 분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김성로 목사의 글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하늘성소의 영원한 제사”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하늘나라 참성막에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기 때문이다.”(김성로, “십자가와 부활로 단번에 이루신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 국민일보, 3.20.16) “구약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땅의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있는 ‘참성소’에서 제사를 드리셨다(히 9:11, 24).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그리스도의 제사는 구약의 제사와는 확연히 다른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가 되는 것이다.”(김성로, “십자가와 부활로 단번에 이루신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 국민일보, 3.20.16) “여러 정통신학적인 주석은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하늘 성소를 단지 상징이 아니라 천상에 실재하는 지성소로 해석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하늘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심으로 구약의 제사처럼 여러 번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단회적이고도 영원한 속죄 제사를 이루셨다(히 10:11∼12).”(김성로, “십자가와 부활로 단번에 이루신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 국민일보, 3.20.16)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영원한 제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모두 포함한 사건이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어 십자가와 부활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필수불가분의 관계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만도 아니고, 부활만도 아니며 십자가와 부활 모두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핵심 사건이다.”(김성로, “십자가와 부활로 단번에 이루신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 국민일보, 3.20.16) 이러한 내용을 보면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이 부활 후에 하늘성소에 가서 자기 피로 제사를 드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단번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십자가에 드린 제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부활 후에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중제사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김성로목사는 이중제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2. 성막제사와 십자가는 십자가와 하늘성소의 대조가 아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이 하늘성소에 들어갔다는 것과 하늘지성소로 예수님이 자기 피를 가지고 들어가 제사를 드려서 제사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성경이 주지하지 않는 내용이다. 제사라는 말은 cerimony 곧 제사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sacrifice 희생제물을 말한다.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면 A. 두가지 대조하는 내용 1) 레위자손에 속한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일시적인 제사장이냐 영원한 제사장이냐를 대조한다.(히6:30,7:1-25) 예수님도 영원히 계신고로 영원한 제사장. 2) 약점을 가진 사람들 제사장과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심-불완전과 완전한 제사(히7:28)-갈리는 직분과 영원한 직분 3) 첫언약과 새언약(히8:7-13)-모세의 언약(그림자/shadow))과 그리스도의 언약(실체/reality)을 말한다. 4) 모형(typical)이요 그림자(shadow)로서 장막과 참 장막(히8:1-5)-그림자로서 모세의 장막(typical)과 참 장막이신 그리스도(reality)를 말한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위하여 모형적(typical) 혹은 그림자로 주신 것. 5)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로서 율법과 참 형상(히10:1) -율법은 그림자(shadow)요 그리스도는 실체(reality) 6) 염소와 송아지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히9:12)-짐승의 피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피를 대조 7)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장막(히9:11,24)-모세의 성소와 창조에 속하지 않은 주님의 몸으로서 성막 십자가와 하늘성소의 대조가 아니라 모세의 장막의 성소와 하늘의 성막으로 주님의 몸을 대조 주님의 육체는 참장막의 휘장. 8) 자주와 단번에(히9:26) 매일제사와 영원한 제사((히10:11-12) -동물제사와 십자가 9) 해마다 제사(동물제사)와 한 영원한 제사(십자가)(히10:11-12) -동물제사와 십자가 B. “단번에”와 제물 (once for all and sacrifice) 단번에(once forf all) 자기(himself)를 드려 이루셨다(히7:27)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히9:12) 자기(himself)를 단번에 제사(sacrifice)로 드려(by the sacrifice of himself) (히9:26)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히9:28) Christ was sacrificed once for all 그리스도의 몸(body)을 단번에 드려((히10:10) 저가 한 제물(sacrifice)로 영원히 온전케(히10:14) 한사람(Christ)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고후 5:14-15)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Christ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요일 4:10) once for all(단번에)은 “시간적으로 짧은 순간으로 한꺼번에”라는 뜻으로 여러 사건을 통틀어서 말하지 않는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한꺼번에 혹은 단번에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 sacifice (희생제물) 에 대하여 히브리서에는 그리스도의 피=그리스도의 몸=그리스도 자신=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심을 말한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는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신 주셨다는 뜻이다. 3. 모세의 성막과 하늘의 성소 하늘의 장막이 상징인가? symbolical? 아니다, 모세의 장막은 모형 (typical)이요 하늘의 장막은 실체다(reality). 이 말씀은 하늘의 장막이 실제로 어떤 실체적으로 하늘에 장막이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이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 antitype 과 prototype인데 땅에 성막이 있으니(antitype) 하늘에도 원형으로서 성막이(prototype or archetype)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2:19-22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부활후에 “예수님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알게 되었다. 에스겔 40-48장에 하나님이 하늘에 성읍과 성전을 보여주시며 측량하라는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하늘성전의 prototype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reality)로서 신약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휘장 안에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히6:19-2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히9:8-9)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8:2) 첫 장막이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9:8)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십자가)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히9:11) 그리스도께서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참 하늘에 들어가사(히9:24) 휘장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히10:20) 휘장은 저의 육체니라(히10:2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후5:1) 그리스도 자신이 제사장이요 자신이 제물이요 자신이 성소의 휘장이요 자신의 몸이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성경은 말씀하신다. 히브리서의 전체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대속하신 사건이 바로 하늘성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부활 후에 하늘성소에 가서 자기 피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4.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 로마서 4:25 그리스도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십자가의 대속사건)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예수님의 부활사건) 속죄(atonement)와 구속(구원)(redemption)은 구분을 해야 한다. 속죄(atonement)는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전하게 이루셨고 이것은 대속(vicarious or substitutionary atonement)을 말하며 구속(redemption)은 부활로 성취되었다. 즉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혹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하신 것(벧전 2:24, 로마서 4:25)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고전 15:3-4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로마서 6:3-11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고 새 생명가운데 살게 되다. 벧전 3:18-19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5. 정이철목사의 공격적인 글에서 나타난 문제점 1) 로마서 4:25의 해석을 통해서 김성로와 기이협이 십자가 50% 부활 50%라고? 십자가는 부활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아무리 찾아봐도 김성로목사가 이러한 내용을 주장한 사실을 찾아볼 수 없고 이단으로 몰기 위한 조작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He was delivered over to death for our sins and was raised to life for our justification(롬 4:25) 죄의 대속의 죽음과 우리의 구원(의롭다하심)을 위한 부활은 그러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예수님도 속죄의 혜택을 받은 자이다?라는 주장이 맞는가? 예수님에게 죄의 전가(imputation)? 죄인으로 예수님이 죽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죄의 전가(이창모) 예수님이 죄인으로 죽은 것인가? 예수님이 죄값을 대신 받으신 것인가? 예수님이 죄인으로 죽었다고 생각하면 시체도 썩고 십자가의 속죄의 혜택을 자신도 받았다고 믿게 된다. 이것이 맞는 것인가? 예수님의 죽으심은 의인으로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대속의 죽음이다. 의인으로서 죄인을 위하여 죄값을 받고 대신 죽으신 것이지 죄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영어로 vicarious(substutionary) death라고 하는데 루이스 벌코프 세가지 전가(대표설)를 말한다. 첫째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된 것이요. 둘째 모든 인류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는데 죄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대신 죄값을 받아 죽으신 것이다. 셋째 예수의 의를 모든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의롭다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의 시체가 썩었다? 는 주장이 맞는가? (행2:27-시16:9-11인용, 2:31, 행 13:33-35, 13:36-37) 성경을 부정한다. 자신의 논리 즉 죄인으로서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썩었다. 성경은 다윗과 예수님을 비교 다윗은 썩었다 예수는 썩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증거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 13:36-37)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매장되셔서 사망의 권세아래 머물렀으나 썩지 않으셨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중보자 그리스도 4번) 4) 영생과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라는 주장 구속의 원리로서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해야 고전 15:3-4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사 22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로마서 5:14-19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아담 : 범죄, 죄, 사망, 심판, 정죄,사망이 왕노릇,죄인, 예수 : 선물, 은사, 구원, 의롭다함, 영생, 생명, 의인, 로마서 6:1-11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죽으심과 연합=함께 장사되다=죄에 대하여 죽음=십자가에서 죄의 몸이 죽음=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죄에 대하여 죽은 자 부활과 연합=새생명가운데 삶=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음=사망이 주관치 못함=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남=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있어 피동적인(passive) 부분과 능동적인(positive) 부분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께 죽은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일으키셨다고 말씀하고(passive),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positive)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0:17-18 -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5) 십자가가 구원의 완성이다.? -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의 해석한다면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ied - 이것이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했다는 의미인가? 헬라어 tetelestai 의 뜻 -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마치셨다는 뜻인가?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죽음을 죽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하실 일을 다 마치셨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마치셨다는 뜻이지 구원을 십자가에서 다 완성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어도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정이철 목사가 주장하는 “십자가는 구원의 완성이요 부활과 영생은 그냥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주장은 옳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4:25, 로마서 6:3-11 이 성경구절들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필연성을 설명해 준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반영한다. 예수님이 인간이어야 함은 인간을 위한 대속이 필요해서이고 신성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어야 함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의 중보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이다.(루이스 벌코프) 따라서 반드시 주님은 살아나셔야(부활하셔야)했다. <저작권자 ⓒ 목회와진리수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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