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메시지를 강조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훼손 되는가?즉 성경전체를 통해 붙잡아야 할 키는 창세 전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인 예수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І. 부활 메시지를 강조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훼손 되는가? 필자가 속해 있는 남침례교단이나 한국 침례교회, 한국의 권위있는 이단연구 단체 기이협, 평이협,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신 박형룡박사께서도 춘천 한마음교회를 한국 교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단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반면 바른믿음 대표이며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담임목사인 정이철목사는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목사를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부활교 이단이라고 무례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을 짧게 요약하면 첫째,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이며 몸의 심장이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된다.” 둘째,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보인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는 키는 십자가이며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부활의 의미도 알 수 없다. 정이철목사는 몸의 심장과도 같은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을 몸의 심장이라고 주장하는 김성로 목사를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심각한 Frame of reference(가치기준)의 차이에 의한 심각한 커뮤니케이션 왜곡현상으로 신학의 이중적 개념과 비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관점(prespective)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편협적인 신학을 바탕으로 한 왜곡 편집된 주장임을 보게 된다. 김성로목사께서 주장하는 부활이 몸의 심장과도 같다는 표현은 정이철목사가 주장하는 몸의 중심적인 관점이 아닌 몸의 기능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십자가는 몸의 심장이 아니라 몸의 피와 같다. 성경에서는 약 400여 곳에서 피를 언급하고 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피가 아무리 건강해도 심장에서 각 신체로 보내 주지 않으면 영양물질 공급이 중단되어 몸 전체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몸의 기능적인 관점으로 볼때 십자가와 부활의 상관 관계는 십자가는 인간의 전 영역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피와 같다면 부활은 피를 각 기관에 보내게 하는 심장과 같은 것으로 이해 해야 할 것이다.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목사는 다음과 같이 십자가와 부활의 기능을 기술한다. “부활은 기독교의 심장이다. 심장이 튼튼할수록 혈액순환이 잘 되듯이, 부활이 확실할수록 보혈은 그 위력(威力)을 발휘한다. 교회마다 부활로 말미암은 보혈의 능력이 살아서 역사하기를 기도한다.” (2013년 김성로목사 성령행전 칼럼에서 발췌) 김성로목사는 한국교회가 십자가는 강조했지만 정작 부활을 강조하지 못해 피를 몸의 각 기관에 뿜어 주는 심장이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성도들이 삶에 변화가 없고 복음의 재 생산이 일어나지 않은 결과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십자가는 각 기관에 힘과 생명을 공급하는 몸의 피와 같다면 부활은 피를 역동케 하는 심장과 같은 것이다. 즉 심장을 중심으로 피가 각 기관으로 뻗어 갈때 몸은 역동적이며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부활 사건 연구가 게리 하버마스박사는 “부활이야말로 시작부터 초대 교회가 선포한 중심 메시지” 였다고 주장한다. 남침례교 조직신학자 스탠리 그렌즈교수는 십자가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은 부활의 관점에서 볼때 만이 참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며 부활이 주는 십자가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그러므로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된다.” 라고 하는 주장은 순차적 교의신학에 의한 부활이 주는 기능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활은 십자가를 믿으면 저절로 따라오는 속죄론적 관점을 통한 인간의 성화론적 측면의 관점으로 바라본 부활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작 전달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왜곡된 주장임을 보게 된다. 그렌즈교수의 주장처럼 십자가의 의미는 부활을 통해서만이 빛을 발휘한다. 구원론은 기독론으로 부터 시작이며 기독론은 기독교의 출발이다. 김성로목사의 주장처럼 십자가가 주는 속죄론적 의미를 먼저 이해하기 보다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누구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것 즉 기독론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로목사의 주장처럼 역사적 부활이 십자가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Ⅱ. 성경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십자가이며 십자가를 모르면 부활은 신기한 하나님의 쇼인가? 또 정이철목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는 키(key)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부활의 의미도 알 수가 없다. 십자가를 모르면 부활은 하나의 신기한 하나님의 쇼(Show)일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즉 정이철목사는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바로 보인다? 라고 주장한다. 속죄론적 관점에서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성경 전체적인 핵심을 볼때는 바른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의 전체 키를 이해하려면 십자가가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더 폭넓은 시선을 바라 볼 수 있다.구약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박살낼 그리스도의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 신약성경을 통해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신 그리스도가 예수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인간의 완전한 속죄와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심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성경 전체적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경전체를 통해 붙잡아야 할 키는 창세 전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인 예수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임을 마지막으로 확증할 수 있는 믿음의 키는 “부활”이며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인지할때 십자가의 참된 의미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2-3) Ⅲ. 부활이 강조 되어야 할 이유? 김성로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누가 죽은 십자가 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의 사도행전 칼럼을 통해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관계를 통해 왜 부활을 증거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피’그리고‘십자가’ 사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구의 피인가?’와‘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는가?’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 십자가 사건은 그냥 한 사람의 죽음일 뿐이며 그 피 또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하였을 때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피’(성자 하나님의 피) (행 20:28)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론의 관점에서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의 피는 평범한 인간의 피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는 보배로운 피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피(성자 하나님의 피)라고 사도행전 20:28절의 말씀을 근거로 전하고 있다. 이렇게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예수의 보혈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부활을 통해서 십자가와 보혈이 어떤 것인지가 재 조명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한 이유인 것이다.” 즉 남침례교 조직신학자 그렌즈교수의 주장과 같이 김성로목사는 부활이 강조된다고 해서 십자가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증될 때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롬마서 1:4 절을 통해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구절로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 1:4)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사건을 통해 인간의 인식에 완전히 인정되셨다는 뜻으로 이해 해야 한다.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의 증거로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달라스 신학교 신학석사(Th.M.)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철학박사(Ph.D)인 J.P. 모어랜드(Moreland) 박사의 주장이다. “부활 사건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 확증(확실히 증명하다)케 하는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다.” 또 영국 버밍엄 대학교 철학 박사, 독일 뮌헨 대학교 신학박사 학위, 현재 탈봇 신학대학원 철학 연구 교수로 재직중인 기독교 변증학자 윌리엄 크레이그 박사는 “부활의 증거의 양과 질을 따져보고 기독교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물론이다.” 라고 주장한다.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에 대한 질문에 얼라이언스 신학대학원에서 전도와 현대 사상 학과장을 역임한 기독교 변증학자 재커라이어스의 박사의 견해도 역시 왜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믿을 수 있는 첫번째 이유를 예수의 부활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부활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신성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다를 모든 종교체계는 진리일 수 없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설득력이 강하다. 인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확증한 사건이자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천국 문을 열어준 사건이다.” 김성로목사는 누가 죽은 십자가인지도 모르고 또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모른체 십자가를 우상처럼 붙잡지 말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이철 목사는 김목사의 주장을 왜곡 편집하여 김목사가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주장했다고 부활로 십자가를 교묘히 가리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주장 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로목사의 견해처럼 필자도 십자가의 참 능력은 십자가의 바른 의미를 알때 십자가의 참 능력을 경험할 있다고 본다. 선악과 과실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의 참된 의미를 알때 선악과는 참 능력을 발휘하는 것 처럼 말이다. 즉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주장하고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증거의 관점으로 보는 반면 정이철목사는 몸의 중심적인 관점에서 십자가를 몸의 심장이라고 주장하고 십자가를 믿으면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라고 주장하는 전제적 믿음에 근거한 종말론적 부활의 관점으로 이해 하다 보니 김성로목사님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된 주장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활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인식, 확증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르게 볼 수 있다고 하는 김성로목사의 의견이 기독교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볼때 설득력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미국 남침례교 조직신학자 스탠리 그렌츠교수는 부활의 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부활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이해에 있어서 토대가 되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언은 모든 사도적 설교의 중심이었다. 또한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삶 속에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초기 신자들의 주장을 위한 일차적인 변증의 역할을 계속적으로 해왔던 한 사건이었다.” (스탠리 그랜츠교수) Ⅳ. 결론 결론적으로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되며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보인다.” 라는 주장은 frame of reference (가치 기준) 으로 인한 곡해로 볼 수 있다. 또 현대 독일신학자 판넨베르크 교수와 미국 침례교 신학자 그렌츠 교수가 주장한 부활을 변증학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즉 기독론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의 기능으로 보지 못한 신학적 부재로 나타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기독론은 ‘역사적 부활’ 이 아니면 확신 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Divine mistery’ (신적 비밀)이다. 신학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은 관점(perspective)이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에 대한 심각한 오류는 신학의 이중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편협적인 신학의 결과로 상대방의 관점을 파악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나타난 왜곡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필자의 주장에 대한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반론을 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뒤에서 정이철목사나 다른 목사들의 왜곡 편집된 비평만 보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정죄하지 말고, 바른 비평 자세를 통해 권위있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설득력있는 반론을 기대한다. 잘 모르면 침묵하는 것이 지혜중에 하나이다. 김성로목사가 신학적 개념과 성경해석에 있어 부분적인 실수가 있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고쳤다는 것은 그만큼 겸손한 목회자라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성경해석과 신학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만든 신학 자체가 완벽할 수 가 없다. 목회자들 중에 전통적인 조직신학책을 제대로 정독하고 비평해 본 적 이 있는지 솔직히 묻고 싶다. 기독교 방송을 통해 무당, 조폭, 마약중독, 동성연애자, 성중독, 게임중독,우울증, 무교, 이단등 세상의 온갖 중독에 빠져 살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으로 믿게 됨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주인되어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와 주라는 것을 증거하는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약 700명의 간증들은 현 기독교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간증이고, 한마음교회의 성도들의 변화 즉 부흥은 복음을 통한 성령의 역사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김성로목사의 목회를 현 목회자들이 도전받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타교회 목회자를 신학이 부족하다거나 근거없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례한 주장이며 먼저 자신의 신학부터 돌아보기를 바라고, 자신의 목회의 열매를 통해 보여 주기를 부탁한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심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님 되어 주셨다는 사실은 수천 번 수만 번 수십 만번 외쳐도 또 외치고 싶은 이 땅에 어떤 소식보다 큰 사건이며 Good News임에 틀림없다. 2017년 2월 2일 애틀랜타 뉴에덴침례교회 이재위목사 <저작권자 ⓒ 목회와진리수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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