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구속이 완성됐다 Vs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다한국교회 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혼선을 교통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각 교단이나 신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 교계이슈 ] 구속의 완성… 십자가? 부활까지? 십자가에서 구속이 완성됐다 Vs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다 이기사는 교회와신앙 기사입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67 【 <교회와신앙> : 엄무환 목사 】 “십자가에서 구속의 완성이 이뤄졌다, 아니다 부활을 통해 구속의 완성이 이뤄졌다.”라는 쌍방의 주장이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교회와신앙>은 쌍방의 주장을 펴고 있는 여러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올바른 분별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살펴볼 계획이다(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자신의 신학적 내지 신앙적 입장을 개진하기 원하는 분들은 필자의 메일 cnf0691@amennews.com로 글을 보내주시기 바란다).
지난달 23일 오후 2시 총신대학교 제2종합관 카펠라홀에서 100여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 ‘복음주의 포럼’이 열렸었다. 이날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이흥선 교수(총신대 실천연구목회연구)는 ‘복음의 핵심, 부활인가 십자가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발제에서 “한국교회 내에서 부활이 더 중요하냐, 아니면 십자가가 더 중요하냐 또는 부활과 십자가의 비중이 똑같으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은 십자가의 바른 의미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이다.”면서 “십자가의 의미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고 정의한 후 따라서 보혈(피)은 곧 생명이며,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죄사함, 거듭남, 새생명을 얻게 되는데 이것을 부활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피로 인해 제사장 됨, 거룩해짐, 그리스도의 형상, 사랑의 인격, 하늘의 시민권, 성령받음, 성령의 권능, 마귀멸함, 병고침, 은사 등의 열매를 맺히게 된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이 교수는 부활과 십자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부활이 피(십자가)를 만드는가?, 아니면 피가 부활을 만드는가? 라는 명제아래 피가 부활을 만들지 부활이 피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십자가와 부활은 절대 두 축이 아니며 반드시 십자가 한 축이다. 나무로 비유하면 십자가는 뿌리에 해당되고 십자가로 맺혀진 여러 열매들 중 하나가 부활이다. 그렇다고 십자가와 부활이 절대 분리가 아니며 뿌리와 열매는 한 몸이다.”면서 “구약의 예언은 성취가 돼야 하는데 십자가를 통해서만 신구약 성도들의 죄가 씻어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순간에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성취되고 모든 성도들의 구원이 십자가를 통해 결정된다, 이것이 십자가의 위대함이고 이것 외의 구원의 방법을 거론하는 건 비진리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교회와신앙>과의 인터뷰에서도 “부활은 구속적 사건이 아니다. 십자가가 구속의 사건이다. 부활은 십자가의 열매 중 하나이다.”면서 “부활은 십자가와 한 몸통이며 열매이다. 부활의 열매는 십자가에 달려진 열매이다. 이 둘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십자가를 믿으면 부활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지 않느냐.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로 완성이 됐다. 구원이 완성되면 재림 때에 자동적으로 부활이 된다. 십자가에 딸려 있는 100% 열매이기 때문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부활로 십자가를 조명하는 것이 틀린 건 아니지만 십자가로 부활을 조명해야 한다. 뿌리가 십자가이고 여러 가지 열매 맺힌 것 중 하나가 부활이다.”면서 “한국교회가 이 부분이 조금 미흡해서 이 부분을 강조했다. 부활은 여러 열매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부활이 이뤄진다. 십자가가 아니면 부활이 이뤄지지 않는다. 부활은 십자가로 인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고 주장했다.
미국 앤아버반석장로교회 정이철 목사(<바른믿음> 사이트 대표자)도 지난 2016년 3월 4일 <바른믿음> 사이트에 게재한 글에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발생된 ‘의’가 적용됨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장차 일어날 우리 모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만드신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결과이다.”고 주장했다. 정 목사는 “부활이 아무리 영광스럽고 위대할지라도 부활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사건이 아니다.”면서 “예수님과 모든 사람의 부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완성하신 완전한 속죄의 열매일 뿐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뜻이다. 부활과 십자가 모두가 속죄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십자가를 지나 부활까지가 우리의 죄를 사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조건은 아니고, 십자가 신앙으로 하나님 백성된 사람에게 동반되는 놀라운 소망이 부활이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이어야 한다. 십자가를 바르게 믿었으나 부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을 이 우주에서 찾을 수 없다. 만일 제철소 용광로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이 실수로 용광로에 빠졌다고 하자! 시신의 가루도 찾을 수 없는 그 사람이 장래에 부활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가 생전에 부활을 강하게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에 달려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직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관건이다. 그가 이미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장차 그 사람의 몸은 반드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혹시 이제 막 성경을 배우는 초신자 단계였고, 십자가의 은혜까지는 알았으나 부활에 대해 자세히 알기 직전에 사고를 당하였을지라도 장차 그의 몸은 분명히 부활한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은 하나님 백성되기 위해 조건이 아니고 십자가 신앙으로 하나님 백성된 모든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소망이고 약속이기 때문이다.”고 설파했다. 심지어 정 목사는 “성경에 무식하여 부활을 모르면 구원받지 못할까? 아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설령 의심이 많아 부활을 믿지 못한다 해도 십자가의 죄사함을 확실히 믿으면 구원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나, 부활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고 주장한 한 독자의 글까지 바른믿음 사이트에 게재하여 자신의 생각과 같은 것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자 “‘부활을 몰라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반구속적 이단사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신학적 답변을 요청한 미국 애틀랜타 뉴에덴침례교회의 이재위 목사의 질의에 대해 “나는 결코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부활이 없어도 십자가만을 믿으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상대방이 하지 않았던 말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것은 정직한 토론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부활을 믿어야 부활과 영생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안에 이미 영생과 부활이 보증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은혜로 구원받은 자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약속이다. 부활과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하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였으므로, 믿는 자에게 자동적으로 영생과 부활의 소망이 따라온다고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복음전도이다.”고 답변했다. 이와같이 이흥선 교수나 정이철 목사의 주장을 정리하면 부활은 십자가를 믿으면 자연이 따라오는 열매이며 성경은 부활과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구원받는 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이철 목사가 운영하는 <바른믿음> 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흥선 교수나 정이철 목사의 주장과 달리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며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신학자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인 박형용 박사이다. 박형용 박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주임교수인 리차드 개핀 박사의 <부활과 구속> 추천사에서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사건이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 문제를 논할 때 예수님의 죽음을 그의 부활보다 더 강조하여 다루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atonement)의 성취로 강조하여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부활에 대한 강조가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서 구속의 성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Gaffin 박사는 바울 신학의 중심주체인 부활을 성도들의 구원과 결부시켜 다룬 다음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박형용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교의신학, 기독론>(보수신학서적간행회, 201-202쪽)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2. 구속사역의 구성분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사역의 본질의 구성분이며 따라서 복음의 구성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눌 수 없는 사건으로 성경에서 항상 함께 언급된 것은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구속사업의 기조가 되기 때문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조직신학)도 부활이 십자가와 함께 구속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제신학 제4권(2002.12.)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교수는 “우리가 부활안에서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라고 할 수 있고, 이 부활 사건에 우리의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 사실상 구원의 사건임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긍정으로서의 부활은 항상 십자가와 연관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고,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이 부활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박형용 박사나 이승구 교수와 같이 부활이 구속의 사건 내지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총신대학교 부총장이자 신학대학원 원장인 한천설 교수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 전 호남신학대학교 명예총장인 황승룡 교수, 그리고 마틴 로이드 존즈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정이철 목사가 영적 멘토로 여기는 서철원 박사도 부활로 구원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다.
세계 보수신학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The Comming of the Kingdom)>, <바울신학>(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저자로 명성을 떨친 헤르만 리델보스의 후계자인 바일링크 (H. Baarlink)의 제자로 세계신약학회(Studiorum Novi Testament Societas) 정회원이요 한국성경공회 성경번역·연구위원이며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교수로 바울서신을 가르치고 있는 한천설 박사(총신대 부총장 겸 신학대학원 원장)는 <목회와 신학> 2000년 4월호에 “죽은 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만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구속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로의 부활'이 그의 구속적 죽음이 갖는 효과에 대한 단순한 증거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주님의 구속사역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구속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죽음은 그의 부활이 그런 것처럼 동일하게 그가 승리한 사건으로 보여지며, 부활 또한 그의 죽으심과 동일하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부활을 단지 구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이 두 사건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황승룡 박사 역시 “부활이 구속사역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1. 부활의 중요성 : 제자들이 행위와 예수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변화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신약의 대답은 예수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부활은 초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였다. 최초로 보도된 기독교 설교는 부활의 사실과 의미를 선포하는 것이었다(행 2:14~36) 2. 부활의 사실성 : 만일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속행위들의 긴 과정은 무덤 속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 전체적인 본질.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본질을 포함한다.”(<그리스도론>, 한국장로회출판사, pp.452~456)"
총신대학원 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한 조직신학자이자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 신학자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서철원 교수 역시 자신의 책(<교리사> 64~70쪽 총신대학교출판사)에서 부활로 성육신과 죽음이 속죄제사임이 밝혀졌다고 말하며,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구원이 성취하였다고 주장했다.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로서 죽고 부활하여 구원을 성취하셨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역으로서 그의 죽음에 구속을 결합시켰다 지난 해 8월14일 한울교회(림헌원 목사)에서 열렸던 개혁신학회학술대회에서도 서철원 교수는 동일한 주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재창조를 기념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많다. 재창조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의 핵심인지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는 질문에 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하나님은 범죄하여 반역한 백성을 다시 돌이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습니다. 이 백성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이루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피 흘리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갚아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므로 백성 회복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속을 성취하시고 부활하시므로 구원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그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었음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최윤배 교수(장신대 조직신학)도 <교회와신앙>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구속의 두 축은 십자가와 부활이다.”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서방교회는 십자가가 강조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가 달려 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부활절을 강조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는 십자가가 강조된다.”면서 “하지만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놀랍게도 십자가와 부활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부활이 약화되면 초월성이 약화되고, 십자가가 약화되면 역사성이 약화된다.”면서 “그리스도라는 말 앞에 ‘십자가에 못박히고 앤드(and) 부활하신 예수님’ 동격으로 가야 한다. 동일한 예수 앞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과거분사(pp)가 동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찰스 스펄전 이후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설교자로 평가를 받는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목사도 “부활이 구원의 완성”이라면서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면서 “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이다.”라고 들었다. 존스 목사는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고 했다.”(마틴 로이드 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쪽)
한길교회(림헌원 목사) 블로그(http://blog.naver.com/beaggobddeaa/220623696181)에 지난 2016년 2월11일 <바른믿음>(정이철 목사가 운영하는 사이트) ‘독자마당’이라는 명칭으로 게시된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 대적자, 이인규 권사, 한천설 교수, 권연경 교수도 마찬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왜 부활이 아닌 십자가복음으로만 구원받을까요? 죄사함 받는 십자가외에 다른 복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은 십자가 죽음 외에는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다른 조건없이 구원 받습니다. 죄 때문에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부활을 안 믿어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죄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따라서 죄만 없으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믿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조건은 김성로 목사가 성경을 왜곡시켜 만들었습니다. 필자가 김성로의 부활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설령 무식하여 부활을 못 믿어도 십자가복음의 죄 사함만 확실히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글을 게시하자 이인규 권사는 마치 큰 이단성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이 부분을 대서특필하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실 성령으로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십자가의 영광으로 나타나는 부활을 안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십자가복음을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진 문맹자가 부활을 모르고 안 믿으면 구원이 취소될까요 하나님께서 부활을 믿고 오라고 내어 쫓을까요? 십자가를 믿고 죄 없는 의인이 된 하나님 백성을 부활을 안 믿었었다고 심판하시겠습니까 십자가 완전속죄를 부정하는 김성로 목사를 부지런히 옹호하는 이단연구가 이인규 권사는 총신대 한천설 교수, 숭실대 권연경 교수 등을 비롯한 십자가복음에 눈이 가려진 신학지식인들의 글을 동원하고 부활이 나오는 성경구절들을 나열하며 이를 비틀고 왜곡시켜 부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 김성로 집단은 예수께서 몸 찢고 피 흘린 구속사역의 능력을 미완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 구속을 50%로 계산하고 부족한 50%를 부활의 구속으로 메꿨습니다. 즉 십자가로 세운 미완성 성전을 완성하려고 자신들이 만든 부활구속을 합쳐 성전을 세운 것입니다. 부활을 왜곡시킨 간교하고 교활한 마귀의 사자들은 반드시 심판의 부활, 영벌의 부활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예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죽은 예수는 능력이 없다! 부활하신 예수가 진짜다!’ 라고 소리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가 누구 때문에 왜 죽으셨는지 모르는 소경들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좁은 문이 기회에 십자가를 막는 김성로 집단뿐 아니라 십자가를 경홀히 여기고 많은 양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한국교회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고발하고자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와 풀러신학교(M.Div.), 미국 예일신학교(S.T.M.), 영국의 킹스칼리지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은 권연경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가 <목회와 신학> 2011년 4월호에 기고한 “부활은 복음이다”의 글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진단한 글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자주 우리의 ‘신학적 편식’에 관해 불평을 하곤 하는데, 그 편식의 가장 치명적인 희생물 중 하나가 부활이 아닌가 싶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는 열광하지만 부활에는 당황한다...교회에서도 십자가와 대속의 은총을 노래하는 찬송은 사시사철 불리지만, 부활을 환호하는 찬송은 부활절만 지나면 금방 ‘철 지난’ 캐롤처럼 어색하다. 예수는 고작 3일 동안 죽음 속에 있었고 이제는 부활하신 주로 계시는데, 우리에게는 늘 십자가가 더 생생하고 부활은 여전히 서먹서먹한 손님 같다. 하지만 갈보리 언덕에서는 고향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빈 무덤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우리의 영성은 과연 건강한가? 역사적 견지에서 말하자면, 교회의 실질적 출발점은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이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보여 주듯,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끝장내는 절망이었다(눅 24:21)...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부활이라는 실제 사건이었다. 절망한 제자들을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시킨 것은 문득 얻게 된 어떤 신학적 깨달음이 아니라 부활의 충격, 곧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와의 맞닥뜨림이었다. 이 만남 속에서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고, 이 부활의 빛 아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 초대 교회 최대의 화두는 부활이었다.”
권 교수는 맺는말에서도 “현재 한국 교회의 위기는 부활 복음의 위기다.”면서 “십자가로 대표되는 대속 신학에 자폐적으로 몰두하며 부활 생명을 놓치는 위기이기도 하고, 십자가의 형태로 드러나는 이 부활 생명을 드러내지 못하는 도덕적 무기력의 위기이기도 하다. 부활의 기적이 빠진 대속 신학은 속죄양 이론이라는, 그 자체로는 특별히 기독교적이라 할 것도 없는 문화 이론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창조와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고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멋지고도 편리한 이론이다. 필자는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이런 수준에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정작 복음을 복음으로 만드는 것은 부활 이야기다. 하나님은 부활의 하나님이다.”고 강조했다.
권연경 교수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바른믿음> 독자마당에 올려진 글에서도 보듯이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경우 십자가 완전속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 완전속죄를 부정하는 사람들’ 또는 ‘십자가복음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며 한국교회 안에 ‘부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에 대해 정이철 목사 등은 ‘부활교’ 또는 ‘이단’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맹공격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김 목사는 예장합동(총회장 김선규 목사) 제101회 총회에 헌의안으로 올라와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위원장 진용식 목사)에 연구조사가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예장합동이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는 김 목사의 주장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한국교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아울러 이 안건으로 인해 부활에 대한 예장합동의 신학적 입장도 밝혀질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십자가만으로 구속이 완성되었다.”는 이흥선 목사와 정이철 목사 등의 주장과 “아니다.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다.”라는 박형용 박사 등 내노라하는 국내외 신학자들의 주장 중 어느 주장이 더 성경적일까. 한국교회 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혼선을 교통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각 교단이나 신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목회와진리수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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