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식목사의 이단성과 그의 고의적인 목적필자는 다시 한번 공개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며, 이러한 내용들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사과하고 수정하지 않겠다면, 필자는 가능한 모든 문제를 폭로하고 비판할 수 밖에
1) 논쟁의 발단과 동기 먼저 이 논쟁이 왜 나타났는지 살펴보자 세이연은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해와 구원론에서 심각한 이단성이 나타남을 발표하였다. 세이연 보고서에는 약 30-40개 이상의 문제점들이 발표하였으며, 그것에 대해서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하였는데 어떤 문제는 심각한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양태론적인 지적은 짧은 한가지의 문제점이었다. 그런데 진용식목사는 계속 삼위일체 문제만을 논쟁하고 있으며, 그것도 “예수는 여호와이다”라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세이연이 말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일 뿐이다. 몇몇 신학교수들에게 진용식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을 보여 주었더니, 조금 읽어보더니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평가할 가치조차 없는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해서 공개토론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필자는 진용식목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2 : 2 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2가지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서로가 사과를 하는 글을 쓰고 모든 글을 다 삭제하자는 제안이었으며, 그렇게 되면 모든 이단연구가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해서 거절 하였다. 둘째는 어느 신문사나 홈페이지를 통하여 서로가 공개토론을 하자고 하였다. 이 제안도 거절하였다. 그 다음에는 지금 이 상태로 각자 알아서 인터넷 신문에 서로 비판하는 글을 쓰자는 것이다. 이 세 번째 안은 필자가 제시한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용식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해서 서로 일방적인 토론을 하자는 것인데, 이것도 거절한다면 예수가 여호와라는 전혀 다른 내용만을 각자 토론하지는 것인가? 2) 필자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하였는가? 필자는 이미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한 성경적으로 볼 때에 예수가 여호와가 아니며 인격적으로 구별될 수도 있다고 말해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호와라는 명칭의 의미가 (1) 성부하나님 (2) 삼위하나님의 총칭적인 명칭 (3) 하나님의 신적본질(Godhood)을 지칭한다고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성부하나님의 지칭할 때에는 예수와 인격적으로 서로 구별되므로 예수를 여호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여호와가 삼위하나님을 총칭하거나 신적본질을 지칭할 때에는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글 뒤에서 캘빈의 주장과 루이스벌콥의 주장을 소개할 것이다. 필자는 또한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며, 인격적으로는 구별되며, 상호교류되는 하나님이라고 수없이 설명하여 왔다. 필자가 운영하는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카페에는 십수년 전에 삼위일체에 대해서 쓴 글들이 아직도 있으며, 필자가 오래 전부터 쓴 책에도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확인하기 바란다. 필자는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의 단일신론을 비판한 적도 있고, 지방교회의 양태론을 비판한 적도 있으며 직접 토론을 한 적도 있다. 세이연이 진용식목사를 비판한 내용은 계시록 1:8의 ‘주하나님’을 ‘예수’라고 인격적인 혼동을 하고 있다고 본 것이며, 진용식목사는 계시록 1:8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여호와”이기 때문에 ‘성부하나님’을 ‘예수’라고 해석한 것이다. 필자는 계 1:8에 대한 진용식목사의 주장에 대해서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파송한 메시아 직분을 뜻한다고 계속 이야기하여 왔으며, 그러므로 성부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구별될 수 있으므로 계 1:8의 그리스도와 성부하나님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석들은 계 1:8의 ‘주하나님’을 ‘성부하나님’이라고 설명한다는 것도 이미 밝혔으며, 진용식목사는 성부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혼동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미 성경적인 예를 들었지만, 다시 설명하자면, 시편 2장 1-3절의 “여호와와 기름부음 받은 자”는 서로 인격적으로 구별되었으며, 사도행전 4:25-26에서 시편 2장이 “주와 그의 그리스도”로 인용되었음을 확인하여 보라. 시편 110편에서도 ‘여호와’와 ‘주’는 인격적으로 구별되는데, 이것이 신약 마 22:43, 막 12:36를 보면 다윗의 주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예수’와 동일한 호칭으로 지칭될 수도 있으며, 당연히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것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수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필자는 그러한 단순한 호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용식목사가 그리스도와 성부하나님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인격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당연히 삼위하나님이며, 여호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성부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직분을 가르킬 때에는 성부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다르다. 왜? 하나님이 보내신 직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구별한 성경적인 근거는 수도 없이 많으며, 진용식목사는 사도 요한과 누가와 바울을 이단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의 주장을 조작하여 내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거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했다는 주장은 웃을 수 밖에 없다. 진용식목사는 조작의 달인으로 보인다. 이 논쟁이 왜 시작되었느냐면 진용식목사가 계 1:8의 성부하나님을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혼동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반박한 것이다. 계 1:8의 주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그리스도와 구별되는 성부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인격적인 혼동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해에서 결론을 보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역사를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성부하나님’을 인격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1)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결론 :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역사를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진용식의 요한계시록 강해. 계1:8) 역사를 계획하고 주관하시는 분은 성부하나님이다. 그런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성부하나님이라면 이것이 양태론이 아니면 무엇인가? 삼단논법식 정리도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것은 사과라고 하여. 원숭이 엉덩이가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삼단논법은 오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므로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는 삼단논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가 성부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성령도 여호와라고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 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또 성령도 삼위하나님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성령과 여호와가 인격적으로는 다르며, 서로 구별되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여호와’가 ‘그가 보내신 영’과 인격적인 구별이 기록되어 있다. (민11:25, 민11:29, 사 11:2, 사30:1, 겔37:1, 슥 4:6) 오히려 진용식목사의 글을 보면 시종일관 “예수 = 여호와”라는 등식으로만 설명하고 있으며, 인격적인 구별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양태론적인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역사를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재림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다시 밝히지만 진용식 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한 세이연의 연구보고서는 필자의 글이 아니다. 그리고 필자가 마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으로 만들고 싶다면 언제든지 조작하면 될 것이다. 진용식목사의 합동보고서와 같이, 필자가 말하지도 않은 것을 필자의 주장인 것처럼 조작하는 사람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정확하게 필자의 글에서 세 본질 또는 세 영을 말하는 삼신론이 나오거나, 하나의 인격을 말하는 양태론이나 단일신론적인 내용이 있는지 언제라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인격과 본질을 혼동한 적도 없다. 필자는 인격적으로 볼 때에는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고 믿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성부가 성자이며, 성자는 성령이며, 성령은 성부라고 믿는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든 조직신학이 말하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다. 또한 삼위는 각각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것도 믿는다. 필자가 “예수가 여호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을 때에는 누가 보아도 성자와 성부가 인격적으로 다르며 구별되므로 다르다는 것이었으며, 필자가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할 수도 있다”라고 하였을 경우는 누가 보아도 성부와 성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모두 삼위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 이미 성경적인 예까지 들었으며, 필자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이해를 하는데, 오직 진용식목사만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는 이유는 고의성이 있거나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본질과 위격에 대한 삼위일체의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면서 “어떤 조직신학교수가 와도 문제가 없다”는 내용으로 설명하였더니, 앞의 설명은 삭제하여 버리고 필자가 “어떤 조직신학자라도 오라”고 했다고 조작하는 글도 보았다. 진용식목사가 자신의 글에 대해서 제 삼자에게 감수를 받는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이런 고의적인 조작은 스스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3) 조직신학적인 견해 필자가 2010년에 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1권을 보면 무려 138페이지에서 199페이지까지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그 책 157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2) 각 위는 각각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일한 신적본질을 공유한다 3)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는 상호구별되시며 교류하신다 칼빈 기독교강요 제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제13장 (chapter ⅩⅢ. 20)에서 삼위일체 하나님(The triune God)에 대한 설명도 필자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특별화하지 않고 언급될 때마다 아들과 성령은 성부와 마찬가지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연계되었을 때는 두 분의 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에 인격들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각 인격에는 특별한 특성이 있고 그분들 안에 질서가 따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는 시작이요 원천이며 구속은 아들과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고 자주 언급되지만 특히 하나님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다”라고 기록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제13장 (chapter ⅩⅢ. 20) 하나님의 이름은 삼위의 세 인격에게 모두 표시될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 구분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진용식목사는 캘빈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진용식목사는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와 세상을 계획하고 주관하시는 성부하나님을 나란히 언급하면서 그리스도가 여호와라고 말하였다. 루이스벌콥의 하나님의 명칭에 대한 조직신학적 견해도 들어보자. 바빙크의 견해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명칭개관에 대해 언급된 것이 뒤따라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명칭 하에 그가 독립적인 인격 실유로 지시되고, 언급된 총칭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들도 역시 포함시킬 수 있으며, 그 다음에 일반적인 신적 실유의 속성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의 구별된 인격들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빙크박사는 하나님의 명칭들을 그 광범위한 개념에 기초하여 고유 명칭들, 본질적 명칭들 또는 속성들, 삼위의 인격적 명칭들로 구분하고 있다."(벌콥조직신학 상권, 기독교문사, 262쪽) 하나님의 명칭이 독립적인 인격에서도 사용되지만, 하나님의 총칭에도 사용된다는 내용이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각각 구별된 인격에도 사용되어지며 신적 속성에도 사용되어지며, 구별된 인격에도 포함된다. 바빙크도 마찬가지로 분류한다. 조직신학책에서 이렇게 설명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필자의 주장은 이단성이 있다고 말하는가? 혹시 필자를 고의적으로 이단으로 조작해야 할 어떤 개인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정당한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하지 않은 말을 필자가 했다고 조작하거나, 말꼬리를 잡아 문제로 만드려고 하는 고의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예수가 여호와라는 등식만을 계속 강조한다면, 그것이 바로 양태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필자가 예수는 여호와라고 말할 수도 있고(본질적 동일성에서), 여호와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인격적 구별에서)고 하였는데, 그것이 틀렸다면 진용식목사는 본질이든 인격이든 예수는 언제든지 여호와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4) 진용식목사의 구원론과 계시록의 문제점 어쨌든 필자는 진용식목사가 원했던 공개토론을 통하여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해와 구원론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정체가 밝혀지기를 원한다. 너무나 잘못된 주장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퍼지기 때문이다. 진용식목사가 지적하는 필자의 문제점은 자신의 문제점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공개토론은 거부하였기 때문에 각자 일방적인 토론만이 진행될 것이다. 진용식목사의 계시록은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풀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수없이 많이 나타나며, 안식교의 세대주의와 유사한 교리들이 언급되어 있었으며, 진용식목사의 구원론은 구원파와 다락방과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 심지어 세상을 하나님(선)과 사단(악)의 대결로 보는 왕권회복설과 사탄배상설까지 나타나는데, 9개 교단에서 다락방을 이단이라고 하였으니, 다락방과 유사한 주장도 이단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의 계시관은 직통계시이며, 진용식목사는 예수님이 하늘성소에서 지금도 속죄사역을 하고 계신디고 주장한다. - 인간의 범죄함으로 왕권을 상실 - 지상의 왕권이 사단에게 넘어갔다. - 인간은 지배하는 왕에게 사망과 질병과 저주의 지배를 받는 인간으로 전락 - 주님은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셨다. - 주님은 인류가 사단에게 진 빚을 다 갚으셨다. (진용식목사의 구원론 3딘계, 18쪽) 문제점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계시록은 신천지의 비유풀이와 다름이 없는 내용도 있다. 진용식목사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이단과 복음사역자의 싸움이며, 그의 아이디가 바로 ‘복음사역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특히 해는 신약을 말하고 달은 구약을 말한다는 비유풀이는 통일교회와 정명석의 비유풀이이다. 더욱이 그는 말 탄자를 복음사역자라고 분명히 말하였는데,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목사직을 걸겠다고 했다. 말뿐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진용식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와 같은 주장도 한 적이 없는가? 다음에는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해를 스크랩하여 그대로 올릴 것이다.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해) - 계시록의 일곱교회는 역사적인 교회로 해석하여야 한다 (계1) - 계시는 주관적 체험으로 되는 것이다. 꿈은 해석이 필요하고 해몽의 은사가 필요하다 (계1) - 주의 날에 계시를 받는다. 계시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것이다 (계1:9-12) - 예수님은 하늘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속죄사역을 하고 있다. (계1:12-16) - 말은 교회를 말하며, 말 탄자는 복음사역자를 뜻한다 (계6:1) - 흰말이 붉은 말로 변하였고, 붉은 말이 검은 말로 변하였고, 검은 말이 청황색 말로 변하였다. (계6) - 광야는 미국이다.(계12:6, 13:17) - 24장로, 4생물, 일곱영은 복음사역자이다. (계4:6-11, 계4:5) - 네 생물의 여섯날개는 예배를 의미한다 (계4:6-11) - 말을 타고 전투를 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보여준 것이다 (계6:1) - 해. 달. 별은 지도자를 말한다 (계6:12, 계8:12-13) - 해는 신약을, 달은 구약을 말한다. (계10:1-3, 계12:1) - 복음이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 (계10:11) - 미가엘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천사이다 (계12:7-12) - 666은 이단이며, 오른 손에 표를 받는 것은 판단의 죄이고, 이마에 표를 받는 것은 세뇌를 받는 것이다 (계13:16-18) - 유리바다와 “같다”고 했으니 가짜 유리바다이며, 가짜 은혜와 가짜 교리를 뜻한다(계15:1) - 아마겟돈 전쟁은 이단들이 하는 전쟁이다 (계16:12-16) -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자는 하나님의 종이다 (계18:1) - 대언의 영은 말씀을 전하는 은사이다 (계19:10) - 바다는 세상이다 (계21:1) -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사자가 생명나무이다 (계22:1-5) -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계22:1-5) 과연 양태론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누구인가? 필자는 다시 한번 공개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며, 이러한 내용들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사과하고 수정하지 않겠다면, 필자는 가능한 모든 문제를 폭로하고 비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필자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것이며, 절대로 조작을 하지 않는다. 필자를 이단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면, 진용식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와 구원론은 이단성이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 공개토론도 좋고, 신학교수를 포함하여 공개청문회를 하는 것도 좋다고 다시 한번 제안한다. <저작권자 ⓒ 목회와진리수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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