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회(요약)] ①우병훈 교수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
“그리스도의 순종과 수난은 함께 우리의 의가 되어” 교부시대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 대부분 학자 인정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김문제 | 입력 : 2021/04/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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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순종교리는 성경적이며 교회사적 근거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수난은 함께 우리의 의가 되어”
교부시대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 대부분 학자 인정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박용규 교수)는 3월 20일 온라인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WEA’를 주제로 제36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가운데 우병훈 교수(고신대)의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와 권경철 교수(총신대)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발제 를 두 주간에 걸쳐 요약하여 소개한다. <편집자 주>
우병훈 교수(고신대 신학과)
1.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 Christi)”이란 그리스도께서 출생부터 수난에 이르기까지 죄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을 뜻한다. 이와 짝이 되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 Christi)”이란 그리스도께서 수난 가운데 그 어떤 저항도 없이 고통과 십자가를 감내하신 것을 뜻한다. 17세기 이후로 주류(主流) 개혁파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이룬 의(義)가 신자에게 전가된다고 보았고 그 두 가지 순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개신교 내에서 칭의론에 대한 논의와 함께 유기적으로 발전했다. 이 교리는 칭의론뿐 아니라 행위언약론, 구속언약론, 성화론, 기독론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16세기 루터파 안에서는 게오르크 카르크(Georg Karg, 1512~1576)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지닌 공로적 성격을 부인해서 논쟁이 되었다. 하지만 1570년, 비텐베르크 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카르크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였다.
개혁주의 신학 내부에서는 16~17세기에 요한네스 피스카토르(Johannes Piscator, 1546~1625)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 제기한 논쟁이 유명하다. 1580년대에 피스카토르와 베자(Theodore Beza, 1519~1605)가 서로 서신을 교환하면서 이 논쟁이 불거졌다. 논쟁이 스위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여러 총회가 이 문제를 다루었다. 논쟁의 참여자들 가운데에는 피스카토르의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피스카토르의 의견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옹호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프리바 총회(Synod of Privas, 1612)와 토냉 총회(Synod of Tonneins, 1614), 네덜란드의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 1618~19)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회의(Westminster Assembly, 1643~1653)는 피스카토르를 반대했다.
보다 최근에도 역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와 관련하여 논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페더럴 비전(Federal Vision)의 노먼 쉐퍼드(Norman Shepherd), 더글라스 윌슨(Douglas Wilson), 제임스 조단(James B. Jordan), 피터 라잇하르트(Peter J. Leithart), 리치 러스크(Rich Lusk) 등과 뉴 커버넌트 신학(New Covenant Theology)의 존 젠스(Jon Zens), 프레드 재스펠(Fred G. Zaspel) 등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부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것은 맞지만 그것은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자신이 속죄 사역을 행하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 학파(New Perspective on Paul)”에 속하는 학자들인 톰 라이트(N. T. Wright)와 제임스 던(James D. G. Dunn)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부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흘러온 교리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6~17세기 대다수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성경적 근거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인정했다. 이러한 합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찰스 하지,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 그레스햄 메이첸, J. 판 헨더런, W. H. 펠레이마, 제임스 패커, 리처드 멀러, 조엘 비키, 마이클 호튼, 더글라스 켈리, 로버트 레담 등 현대의 중요한 개혁신학자들은 모두 이 교리를 성경적인 것으로 보며 지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 속에서 주요한 신학자 9명을 선택하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타당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능동적 순종 혹은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 자체는 1560년대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교리의 “맹아적 형태”가 이미 교부시대부터 있었으며, 그것이 역사 속에서 점차 발전해 갔다는 사실을 분명히 살펴볼 수 있다.
2. 능동적 순종 교리의 역사
1) 교부들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Irenaeus)의 총괄갱신설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우리의 구속을 위해 필수적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확장하고 성취하는 분이실 뿐 아니라, 성취하신 율법의 의들을 우리에게 심으신 분이시라고 주장한다.
4세기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로고스께서 성육신 하신 목적이 율법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가르쳤다. 그에 따르면, 로고스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또한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율법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시다.
5세기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갈 4:4~5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갇힌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율법 아래 들어오셨고 율법과 함께 계시면서 율법의 성취자가 되셨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 사상”을 제시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신자들이 행한 일이 되기에,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자들도 역시 율법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2) 중세 신학자들
중세에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공로사상에 의해 왜곡되긴 했지만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 표현되었다. 11세기의 안셀무스(Anselm)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단지 십자가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전생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전생애에 걸쳐 진리와 정의를 행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이성적 피조물은 하나님께 이러한 순종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셀무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신자들에게 전가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 순종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가 당연히 하셔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자에게 구속적 효과를 발휘하는 순종이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만 인정하는 것이다.
12세기에 베르나르두스(Bernard of Clairvaux)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구원을 이뤄내시면서, 삶 가운데 ‘수동적 행위’를 가지셨고, 죽음 가운데 ‘능동적 수난’을 견뎌내셨다.”라고 설교했는데, 17세기 능동적 순종 교리를 다뤘던 신학자들은 이 표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두스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강조한 것은 맞지만, 그에게 그러한 순종은 신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범으로만 작용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베르나르두스는 그리스도의 출생이 지니는 구속적 성격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에 나기를 원하셨는데,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였다(갈 4:4~5). 또한 ‘율법의 칭의’가 그의 지체들에게 영적으로 성취되기 위해서였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신 일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를 가르쳤다. 롬 4:25에 대한 아퀴나스의 설명은 17세기 개혁신학에서 능동적 순종 교리를 지지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퀴나스 역시 주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만 가르쳤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상의 3명의 중세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공로주의적으로나 모범적으로만 해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중세기 신학자들의 견해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순종하신 것은 대속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고 하며,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수난만이 대속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3) 종교개혁자들
종교개혁기 신학자들이 제시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가르침은 교부들의 사상보다 구체적이면서, 중세 신학보다 더 성경적이었다. 16세기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신 3:21, 요 1:6, 갈 4:5, 갈 3:13에 대한 설명에서, 때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칭의의 근거가 된다고 볼 때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여 각각이 우리를 위한 순종의 행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1535년에 출간된 대(大) <갈라디아서 주석>의 갈 4:5에 대한 설명에서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서 행하신 능동적 순종이 신자들의 공로가 된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갈 4:6에 나오는 “아빠, 아버지”라는 표현에 대해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나신 이유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죄와 사망을 폐하시려 함이었다고 주석한다.
존 칼빈(John Calvin)은 롬 3:22에 대한 주석에서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주장한다. 롬 3:31에 대한 주석에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의를 가진 분으로 묘사하며, 그러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칭의가 일어나며 성화가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2.12.3에서 롬 5:12~21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따로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23에서 칼빈은 롬 5:19를 인용하여,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칭의에 필수적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칼빈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분명히 말한 부분이 여러 군데가 있다.
16세기에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가 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해설』의 제16문답 해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신 것과 형벌을 받으신 것이 각각 율법을 성취하신 것을 지시한다고 가르친다. 제19문답에 대한 해설에서는 레 18:5, 마 19:17을 주석하면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의가 주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르시누스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60문답 해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가장 분명한 표현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비록 이 해설에서 우르시누스가 일차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에 따른 의이긴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의가 된다는 사실도 역시 가르치고 있다. 1582년에 우르시누스는 프랑스 개혁신학자 다니엘 토사누스(Daniel Tossanus, 1541~1602)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합의”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신도 역시 그로부터 떠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대부분 인정했던 교리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3. 성경적이며 교회사적 근거가 분명한 능동적 순종 교리
엄밀하게 보자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17세기에 최종적으로 발전된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상에서 우리는 그 교리의 핵심적 요소들이 교회사 가운데 주요한 신학자들의 작품에서 분명히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레나이우스,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주요 교부들과 루터, 칼빈, 우르시누스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교리를 성경에 근거하여 건실한 형태로 제시하였다.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교리를 형성할 때 늘 그렇게 한 것처럼, 그들이 이 교리를 형성할 때에도 단지 하나의 구절에만 의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함께 병치시켜 주석하면서 결론을 도출했다. 여러 성경적 근거 중에 가장 자주 제시되었던 핵심구절은 롬 5:19와 갈 4:4~5이다. 롬 5:19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와 대조를 보여주는 맥락에 위치한다.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한다. 이때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당연히 전생애적인 순종으로 봐야 하며, 그 안에는 수동적 순종뿐 아니라 능동적 순종이 함께 들어있다. 갈 4:4~5에서 바울 사도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많은 성경해석자들이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 “율법 아래”라는 것은 “율법의 규율 아래”를 뜻한다. 따라서 롬 5:19와 갈 4:4~5를 종합하면, 전생애에서 율법을 지키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십자가 수난을 당하신 수동적 순종이 함께 우리의 의가 되어 속량 곧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분명하고,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한 교회사의 유수한 신학자들이 인정했으며, 현대 개혁신학자들 대다수에 의해서 지지받는 소중한 교리이다.
노충헌 기자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