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믿음 정이철목사의 김성로목사에 대한 오류를 지적정이철목사님께서는 편협적인 시각을 버리시고 김성로목사께서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겸손한 자세로 배우기를 바랍니다.
바른믿음 편집자인 장로교 정이철목사는 한국 침례교단에 소속되어 목회하는 김성로목사의 부활론에 대해 사악한 이단이며 종교 장사꾼이며 하나님께 심판받아야 할 자라고 자신이 운영하는 바른믿음 사이트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침례교와 미남침례교단은 목회자 세미나에 김성로목사를 강사로 초청할 만큼 김성로목사가 주장하는 부활복음을 지지하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이단 연구단체인 평이협, 기이협에서도 김성로목사의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김성로목사의 부활복음을 지지하고 있으며 한마음침례교회에서 주최한 제 4회 부활복음 목회자 세미나에서 박형룡박사(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현 한국개혁주의연대 회장) 께서도 “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 너무 잘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의 속죄, 구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부활에 대해선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김성로목사님께서는 부활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너무 너무 좋게 생각했다.”고 강의했다. 즉 본 교단과 이단 연구단체들과 신학박사들도 김성로목사에 대한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고 춘천한마음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필자도 김성로목사의 설교와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초대교회 사도들이 증거했던 복음하나로 승부하는 교회라는 것에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유독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를 십자가를 가리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이철목사의 주장이다. “김성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속죄를 성취하였고 부활로 확증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은 표면적으로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매우 위험한 사상이 흐르고 있음이 보인다. 우리는 부활이 없었으면 십자가의 속죄가 온전해지지 못했다는 그의 부활교 사상이 교묘하게 드리워졌음을 간파해야 한다. 만일 김성로씨가 정말 부활교 이단사상을 깨닫고 버렸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속죄가 완전하였고, 하나님이 100% 만족하게 받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었다" 부활이 십자가의 '속죄를 확증하였다'는 표현은 십자가의 속죄가 100% 완전하여 자동적으로 부활이 따라서 일어났다는 말과 유사해 보인다. 김성로 씨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모호한 표현 속에 김성로의 거짓된 부활교 사상이 뱀처럼 교묘하게 감추어졌있다는 것은 바로 그 다음의 문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반된 견해들이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필자의 개인적 견해는 첫째, 김성로목사가 주장하는 부활론에 대한 정이철목사의 “커뮤니케이션의 왜곡현상”으로 인한 ‘곡해’임을 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왜곡현상이란 전달자가 의도했던 메시지의 내용이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가치기준” (Frame of reference)의 차이로 인해 동일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데 오는 현상을 말한다. 둘째, 정이철목사의 커뮤니케이션 왜곡현상의 원인은 부활론, 구원론과 성령론의 대한 신학적 부재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반대 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이단이며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자랑임에 틀림없다. 먼저 정이철목사는 김성로 목사가 주장하는 부활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부활이 주는 의미를 편협적 시각에서 바라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정이철목사는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는데 왜 부활을 강조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 정이철목사의 주장이다.. 먼저 김성로목사가 주장하는 부활은 나사로 부활의 개념이 아닌 “완전히 죽고 완전히 살아나 다시 죽지 않고 승천하셨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부활의 국어사전적 개념도 “부활은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즉 부활이라는 개념안에 십자가에 죽으심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김성로목사께서 주장하시는 부활의 핵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부활로 확증함으로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의 은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부활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확증하고 부활로 확증된 믿음을 통해 십자가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십자가의 속죄의 원리보다 먼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많은 사건들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했지만 정작 제자들은 죽음앞에 도망가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떠났던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직접 표적이 된 부활(죽으시고 살아남) 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심으로 제자들이 무엇을 증거해야 할지가 분명해 진 것을 보게 된다. 요한복음을 통해 복음서의 기록목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을 통해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사도들 처럼 예수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보지 않고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마가복음 16장을 통해 “본자들의 말을 믿는 것”이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막 16:14) 그들이 본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믿을 수 있다고 증거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을 기록한 사도바울은 제자들 처럼 , 기적, 죽으심, 부활의 순서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성로목사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먼저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머무는 신앙에서 부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이철목사는 ‘부활’을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를 믿을 수 있는 “증거”에 관점이 아닌 “종말론적 구원”의 관점으로 보다보니 부활을 십자가의 부속물로 생각하는 정이철목사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가 부활이 모든 사람이 믿을만한 객관적인 믿을 만한 증거로 주장하는데 있어 성령의 사역을 부활로 대치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정이철목사의 심각한 성령론의 신학적 부재라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의 사역은 반드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성령이 하시는 구체적인 사역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 정확한 표현은 “성령도 그 증인이다” 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사도들도 부활의 증인이지만 성령도 부활의 증인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김성로목사는 부활의 증인들은 반드시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역사적 부활로 믿음을 확증했지만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생명걸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이철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속죄가 완전하였고, 하나님이 100% 만족하게 받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라고 주장하며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는데 왜 부활을 강조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가리고 있다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은 편협적 부활론과 구원론의 신학적 부재임을 나타낸다. 인간의 완전한 구원에 있어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조건이 합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될때 비로서 완전한 구속이라고 말씀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셨다. 하지만 인간들이 믿음으로 화합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자식에게 집을 유산으로 주었는데 정작 집문서가 없다면 현재 살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면 그 집은 완전히 내 집이라고 객관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것과 같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반드시 집과 함께 집문서를 자식에게 주어야 완전한 상속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서만이 받을 수 있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만약 기독교의 믿음이 부활의 증거 없이 성령을 통해 십자가의 속죄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믿었다고 가정했을 때 제자들이 생명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객관적으로 증거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의 증거 없이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4) 즉 십자가는 인간의 속죄에 대한 완전한 선포라면 부활은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구속의 객관적인 완전한 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인격적(지정의) 믿음위에 성령은 내주하여 생명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열정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죽으심과 살아나심)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 진 사실이 아니라 창세전 부터 계획하시고 약 1400년의 역사를 통해 예언하시고 완성하신 창조주가 직접 표적이 되어 이루신 지상 최고의 사건이다.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의 완전한 구속의 조건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이루신 기묘자, 모사이신 영존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보여 주는 지상 최고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 두 가지가 선포될 때 완전한 구속이라고 정의 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이철목사의 주장은 김성로목사의 부활론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의 왜곡현상으로 인한 곡해이며 편협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부활론, 성령론, 구원론은 결국 정목사의 신학적 부재로 인한 결과임을 보게 된다. 위대한 십자가의 신학자 사도바울은 부활의 증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행 26:22-23)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유명한 부활 사건 연구가 게리 하버마스박사는 “부활이야말로 시작부터 초대 교회사 선포한 중심 메시지”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활이 증거될때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십자가가 자랑되기 때문이다. 정이철목사님께서는 편협적인 시각을 버리시고 김성로목사께서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겸손한 자세로 배우기를 바랍니다. 확실한 믿음은 확실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천지 창조보다 더 큰 창조주가 표적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부활을 통해 입증하신 놀라운 사실 앞에 전하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정목사님께서 목회하시는 성도님들 중에 주와 복음을 위해 살고 있는 성도들의 간증이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미 남침례교는 김성로 목사에 대한 자료를 모두 검토한 결과 아무런 이단성이 없고 고쳐야 할 부분인 하늘성소, 이중제사에 대한 언어적 표현의 문제는 이미 시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침례교단인 김성로 목사에 대해 타 교단 목사가 더이상 관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열심은 최악을 낳는다는 것을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애틀랜타 뉴에덴교회 이재위목사 <저작권자 ⓒ 목회와진리수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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