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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정이철목사에게 드리는 공지:

"부활 강조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겠는 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완전 말살시키려 하는 가?"

김문제 | 기사입력 2016/11/10 [08:04]

바른믿음 정이철목사에게 드리는 공지:

"부활 강조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겠는 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완전 말살시키려 하는 가?"
김문제 | 입력 : 2016/11/10 [08:04]
림원원목사 / 정이철목사 / 이창모목사 / 이재위목사

2016년 11월 08 19:04:34 춘천한마음교회 부활강조는 십자가 말살시키기라는 제목으로 영분별이라는 익명의 독자를 통해 글을 올렸다. 바른믿음 정이철목사가 기사를 승인했다는 것은 바른믿음 정이철목사도 이 기사의 동의한 걸로  이해하겠다. "영분별=정이철목사"로 이해하겠다

 

바른믿음 측 주장 1.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표적이며 영생의 표적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영생을 추구하는 기독교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면 십자가복음을 먼저 깊이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십자가보혈의 죄사함만이 부활로 나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춘천한마음교회는 부활을 특별히 강조하는 교회다. 김성로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부활이 죄사함과 구원을 준다는 부활구원론을 세우려는 속셈이 있다. 김성로목사가 부활을 특별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들고 나오는 증거는 제자들이 가장 먼저 부활을 전할 맛디아를 제비뽑았다는 점과 제자들이 사도행전 초기부터 부활을 전했다는 것과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통하여 부활을 강조한 점을 들어 부활이 가장 중요한 복음이기 때문에 부활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반론: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면 십자가복음을 먼저 깊이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며 어느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자랑이며 십자가를 통해 죄용서되고 속죄의 속전(댓가)이 십자가의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이기 때문이다. 

김성로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의 원리보다 먼저 수반되어야 할 것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부활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객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김성로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속죄론적인 관점이 아닌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부활을 통해 예수가 누구인가를 믿을 때 예수의 흘리신 피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요한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일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는 「국제신학」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라는 글에서 “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J.P. 모어랜드(Moreland) 박사는 예수의 부활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상황적 증거를 제시한다. 부활 사건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 확증케 하는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다. 로마의 무지막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교회가 출현한 사실은 모울(Moule)의 말대로 “역사에 위대한 구멍, 즉 부활 만한 크기와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바른믿음측 주장 2.  

김성로목사는 제자들이 먼저 부활을 전한 이유는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산 예수를 전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호도이며 왜곡이다. 

 

이에 대한 반론: 

김성로목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바른 복음이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바른믿음측 주장 3.

당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나 고린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의 시체를 지켰던 군병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께서 3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마27:63-64) 만약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스라엘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염려하였다. 메시아를 죽인 죄로 자신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돌로 맞아 죽게 될 것을 염려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의 시체를 지킨 군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라고 시켰다.(마 28:12-15절) 

당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온 이스라엘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이스라엘을 넘어 로마나 고린도등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면 다 퍼졌을 것이며 또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헛소문도 함께 퍼졌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해갔다는 거짓소문을 믿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나 고린도교회 유대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사도행전 첫머리부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먼저 전파한 것은 제사장들과 군병들이 퍼뜨린 헛소문을 바로잡고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는데 찬성한 것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진리의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로마서 첫머리 그리고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반복하여 예수의 부활을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바른믿음 측의 주장하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이유가 헛소문을 바로 잡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는데 찬성한 것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부활을 주장했다는 것은 성경을 자의적 주관적 해석임을 보게 된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는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였다면 사도바울은 예수의 이름도 모르는 이방인들을 향해 전도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방인들은 예수의 이름을 들어 본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사도바울은 예수와 부활을 증거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행전 17:18,20)

I.H.Marshall, Longenecker, Haenchen의 견해에 의하면 철학자들은 바울을 새로운 신들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아덴에는 수많은 이방신들이 숭배되었고 또 그 신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철학자들은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강조하다 보니 예수를 한 이방신으로 생각했으며 '부활'을 ‘아나타시스’이란 즉 예수란 신의 배우자인 여신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바울은 아덴에서 이방인들에게 예수와 부활을 강조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도바울은 아테네에서 예수와 부활을 증거한 이유가 헛소문을 바로 잡고, 예수를 죽이는 찬성한 것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17장 30절의 회개는 '메타노에오'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서 계속적인 명령의 뜻을 내포한  이 회개는 삶의 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회개로  여기서는 아덴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치고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 17:30)

바른믿음 정이철 목사의 주장은 참으로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자의적 성경 해석임을 보게 된다. 

 

바른믿음 측 주장 4.

그런데 김성로목사는 이런 동기를 모두 뒤로 감추고 부활이 십자가복음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부활을 강조했다고 가는 곳 마다 호도하고 있다. 

이 말에 미혹된 어느 춘천한마음교인은 자신이 십자가복음만이 복음이라고 믿었으나 부활복음을 믿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청년이 처음에는 십자가신앙에 머물다가 십자가를 대적하는 잘못된 부활복음을 듣고 의심하며 갈등하다가 결국은 분별력을 잃고 십자가를 대적하는 부활신앙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빨리 돌이키기를 마음 간절하다.

 

이에 대한 반론: 

십자가와 부활의 중요성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 양면처럼 기독교의 핵심 사건이며 복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한마음교회 성도들은 역사적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었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확증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는 것이다. 십자가 신앙에 머물렀다는 의미는 부활의 증거없이 전제적인 믿음을 통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었다면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통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는 것이다. 결코 부활사건을 강조한다고 해서 십자가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죽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함으로 십자가의 복음의 가치를 재 조명시켜 주는 것이다. 

 

바른믿음 측 주장 5. 

십자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이다. 아담이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죄가 없어지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 그만큼 죄가 무서운 것이다. 만일 죄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죄 없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성경도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믿음이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며 그분의 십자가 죄사함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죄 사함이 완성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죄사함받고 부활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십자가는 내가 죽는 십자가이다. 그런데 김성로목사는 십자가에서 죽지 말고 부활까지 나가라고 가르친다. 예수 죽은 십자가에 머물지 말고 부활로 나가라는 망령된 말로 구원을 가로막는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죽은 자만 다시 살아나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믿어야한다고 말하며 여기저기 복음적인 성경구절들을 가져다가 부활에 끼워 맞추어 부활복음을 만들었다. 이것을 믿으면 결과가 참혹할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라고 한다면 편협적 종교로 전향할 수 있다. 기독교는 죄사함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의 종교이다. 

그리고 믿음이란 단순히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보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며 십자가의 피흘리신 예수의 피는 성자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이기에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의 피임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속죄 ‘atonement’를 통해 단번에 죄 사함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믿고  부활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믿는 것이다. 침례는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십자가에서 죄는 죽고 부활로 새 생명가운데 사는 것이다. 바른 믿음 측의 주장은 구속의 편협적 개념을 갖고 있다 보니 구속의 이중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보게 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바른믿음 측 주장 6.

김성로목사는 부활복음을 세우기 위해 산 예수와 죽은 예수로 두 동강 내고 십자가만 믿는 믿음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산 예수와 죽은 예수가 한 분임을 모르고 두 동강내고 있다. 이런 자를 따르면 결과는 멸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춘천한마음교회의 부활 강조는 단순강조가 아니라 십자가를 죽이는 부활 강조이다.

 

이에 대한 반론: 

김성로목사는 부활복음을 세우기 위해서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이심을 증거함으로  십자가의 피가 얼마나 위대한 전능자의 피임을 강조하기 위해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 예수와 죽은 예수를 두 동강 내는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누구인지 모르고 십자가만 붙들면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이천년 당시 예수님만 십자가에 죽었는가? 수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님 처럼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능력이 있는가?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이 피는 전능자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종교의 신이 피조물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 죽게 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자랑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놀라운 사랑을 자랑하려면 자랑만큼 큰 증거가 필요하다. 이 증거가 역사적 부활사건(Historical Facts)이라고 김성로목사는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딤후 2:8)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31) “He has given proof of this to all men by raising him from the dead.”

‘믿을 만한’ 으로 번역된 πίστιν ‘피스틴’ 은 굳건한 사실의 기반에 근거 한 확신이나 증거라는 의미이다(A. T. Robertson). 즉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어 매장되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은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통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를 범한 인간들을 당신의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결론

바른믿음 측의 주장은 부활과 구속의 개념이 편협적이며, 반론에 대한 성경적 주장들이 비성경적이며,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왜곡된 주장임을 보게 된다. 

김성로목사의 복음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증거하는 복음이다. 현재 춘천한마음교회 650명이 기독교 방송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간증은 복음의 선한 열매임을 보게 된다. 

바른믿음 정이철목사에게 질문하고 싶다. 응답하길 바란다. 

정이철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 성도가 있는 가? 

있다면, 성도 중에 주와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간증이 있다면 공개해주길 바란다. 

말이 아니라 성도들의 변화된 삶과 열매를 통해서 증거해 주길 다시 한번 부탁한다. 

이 부탁을 피하지 말길 바란다. 

 

이재위 목사 / 미 남침례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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