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진리수호

본인은 제4차 답변을 기침 및 8교단 이대위원장님들에게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앞으로 본인은 위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책자에서 지적된 내용을 수정하여 재출판했으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똑바르게 가르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문제 | 기사입력 2016/11/24 [21:52]

본인은 제4차 답변을 기침 및 8교단 이대위원장님들에게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앞으로 본인은 위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책자에서 지적된 내용을 수정하여 재출판했으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똑바르게 가르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문제 | 입력 : 2016/11/24 [21:52]

본인은 제4차 답변을 

기침 및 8교단 이대위원장님들에게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86년에 대학캠퍼스에 들어가 대학생 6명을 만나 제자 양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교회를 개척하였고, 안락한 가정이나 나를 위한 시간도 없이 오직 제자양육에만 몰두하였지만 사람이 변하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본인은 목회 9년차에 모든 훈련과 양육을 내려놓게 되었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과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사도행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때 알게 된 것이 바로 초대교회를 세운 복음의 핵심이 ‘부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행4:33). 우리에게 있어 부활이 일 년에 한번 ‘부활절’ 절기 행사로 끝나다보니 성도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주를 만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행2:42-47, 행4:32-37, 행5:41-42).그런데 본인의 목회현장에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변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활, 즉 지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본인의 의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1.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에 대한 입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드린 단 한 번의 제사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드린 속죄제사가 온전한 제사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며, 십자가와 하늘성소에서 두 번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영원한 제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활 후에 하늘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를 드린다”는 표현에서 속죄와 구속에 대한 용어적인 혼동이 있었으며, “부활 후에 성소에 들어갔다”는 내용도 부활에 대한 시간적인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이로 인해 두 번 제사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범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십자가의 대속사건)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예수님의 부활사건)’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신 속죄를 확증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와 하늘 성소의 제사는 한 사건, 한 제사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믿습니다.

본인의 저서 “하나님의 승부수의 부활” 187쪽(26-27쪽 참조)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차후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린 제사가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라고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문2.“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죽음이며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피”에 대한 답변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책자에서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책자에 나오는 많은 신앙적 적용점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즉 기독론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죽음’ 이런 표현은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기초한 신앙적 고백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희생과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죽음’과 같은 표현은 영이신 하나님이 물리적인 피를 흘리셨다거나, 영원하신 하나님이 죽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주장하는 ‘성부 수난설’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사도행전 3장 15절에서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주”는 생명을 주관하는 자 즉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그 예수님은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십니다(요20:28, 빌2:6-7, 행20:28). 그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하나님이 죽으셨다고 유추하여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신학적으로 오해하셨다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표현에 주의 하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20:28) 여기서 ‘하나님의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의미합니다.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공동번역, 사도행전20:28)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잘 살피십시오. 또 여러분은 양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서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이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표준새번역, 사도행전 20:28)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이디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의 뜻은 “자기에 관한, 자기의 속한, 자신에게 관계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his own"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며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자기에게 속한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곧 ”자기에게 속한, 자기와 관계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은 ”아들의 피“라고 직역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20장 28절이 ‘하나님의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피’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문3. 사도행전 17장 30-31절 해석에 관한 답변

사도행전 17장 30-31절은 문맥상 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날에 관하여’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확실한 증거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와 함께 사도행전 17장 30-31절에서 의 부활은 그 ‘정하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정해진 심판날’에 심판하실 분이라는 사실 또한 동시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사도행전 17장 30-3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지는 일종의 ‘증거’로서의 속성, 곧 예수님이 구약부터 예언된,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다시 오실 심판주이시며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이시라는 광의적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다고 봅니다. ‘부활’의 이러한 증거로서의 기능은 로마서 1장 4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본인이 말하는 부활이 하나님이 주신 믿을 만한 증거라는 해석은 지금까지 없던 새롭고 특별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의 근간을 이뤘던 역사적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선포하는 기독교 변증의 한 맥락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었고(행4:33),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행9:20). 또한 현대에 있어서도 부활의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비단 본인뿐 아니라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게리 하버마스, 리 스트로벨,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등)들이 역사적 사건인 부활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부활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기독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17장 31절, 로마서 1장 4절 등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다시 오실 심판주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문4. 요한복음 2장 22절 해석에 관한 답변

요한복음 2장 22절의 1차적 의미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성전된 자기 육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해 기록된 구약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본인이 요한복음 2장 22절을 말하는 이유는 부활 현현의 체험을 통해 구약성경을 바라고보 믿게 된 제자들과 같이, 현대를 사는 우리 또한 부활을 통해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을 믿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도들과 같은 직접적인 부활의 목격이 아니라, 성경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본인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 성경 말씀이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R.A. 토리(TORREY)목사님은 부활을 통해 성경을 믿을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증거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이 책에 있는 모든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인장입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있는 약속들을 거듭 확증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성경 전체를 확증하셨습니다. 성경전체를 통째로 받으실 뿐 아니라, 세부적인 것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인치셨듯이,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들이 진실되다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와 아멘’입니다(고후1:20)

또한 본인은 회개와 믿음, 또한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임을 항상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 교회 제자양육교재 1권 책자 제목이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라’입니다. 이 제목과 같이 부활의 증인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아무리 부활을 잘 설명한다 하더라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고(고전12:3), 회개의 역사(요16:7-9)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5. ‘십자가 사건’과 ‘구속의 완성으로서의 부활’에 관한 답변

십자가와 부활은 구속적 사건입니다 본인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구속적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구속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본인이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함께 부활을 구속의 완성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십자가’입니다(막10:45). ‘대속제물의 피 흘림’을 통한 구원이 하나님이 정하신 도(道)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죽음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죄를 대속하실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의 죄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복음의 핵심 사건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 (롬6:23 “죄의 삯은 사망”).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활이 전제된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입니다. 본인은 분명히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가지 구속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이 구속적 사건이며 구속의 완성이라는 주장은 본인뿐 아니라 많은 신학자들이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고, 그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확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십자가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부활하신 예수”를 절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살아계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입니다.

본인은 26여년 목회하면서 침례교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목회를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혹자들이 말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친 적이 없고, 정통신학을 부정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 본인이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확증이 되면 십자가 사건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일보에 기고한 칼럼처럼 “부활을 통해 십자가를 바라보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앞으로 본인은 위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책자에서 지적된 내용을 수정하여 재출판했으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똑바르게 가르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16년 10월 26일

 

        기독교 한국침례회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 드림